연재소설-선인장이야기(19)

입력 1994-04-23 08:00:00

그런 혜수와 달리 미수는 일찌감치 제 진로를 잡아놓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 미수가 내가 다녔던 지방 국립대학교의 불문학과에,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했을때 어머니께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졸업하기도 전에 스튜어디스로 취직한 미수가 이년 전 결혼 적령기가 가까워져서 더이상 해외로다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프랑스계 외국인 회사에 높은 연봉을 약속받으며 스스로 알아서 직장을 옮겼을때도 어머니는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리셨다. 거기다가 한달전에는 드디어 정말 흠잡을데가 없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며우리들에게 선보였다. 아직껏 결혼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나나 다른 형제들과 달리 학교나 직장, 결혼에 이르기까지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안정되게 살아온 미수야말로 어머니에겐 진짜 효녀였다.어릴 때부터 미수는 몇분 차이로 언니가 된 혜수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혜수가 나와 같은 방을 쓰거나 홀로 있기를 원한 반면 미수는 항상 막내답게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고 했고, 간단한 청바지 차림인 혜수와는 달리 멋을 내기 위해 내 옷장까지 뒤지고 다니기를 서슴지 않았다. 미수에겐 남다른 허영심이있어서 학비에 들어갈 돈 이상으로 그애의 의상과 화장품을 구입하는데 쓰여져도 어머니는 서울에서 홀로 지내는 혜수의 생활비를 대는 것보다 미수의 뒤치닥거리를 더 즐거워 하셨다.

미모까지 돋보여 누구나 입을 대는 미수를 자랑스러워 하셔서 어머니는 미수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마땅한 지출로 여기셨다. 하지만 여자 아이가 집을 떠나 있는건 좋을게 하나도 없다며 늘 혜수는 못마땅해 하셨다. 어떨 땐 혜수의기숙사비조차 제대로 올려 보내지 않으시기도 했다. 그래도 혜수는 어머니를채근하지 않았고 제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과 책값에 보탰다.혜수에 대한 갖가지 상념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줄지어 떠오르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연극이 끝났다. 혜수가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기위해 다시 무대로 나왔을때 가벼운 두통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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