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서재필의 문과 문

입력 1994-04-0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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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서재필박사의 유해가 전남 보성군 문덕면고향 생가에 만 하루 안치되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기전에 잠시귀향, 혼백의 여행을 한셈이다. *귀향코스중 빠뜨릴수 없었던 곳이 서울 서대문밖의 독립문이었다. 독립문은 서박사의 유형업적 중의 대표적인 것이다.그때까지 임금이 몸소 나아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사대의 상징, 영은문을 헐고 그 옆자리에 세운 유럽풍의 새 명소이자 독립정신의 상징 구조물이다.*러시아인 세레덴.사바틴의 설계로 이공사가 진척될때, 온 민중이 자김과석재를 모아왔는데 이 사업을 조직 주도한것이 서박사를 대표로한 독립협회였다. 1896년 독립문이 준공되던날 정부의 각료와 학교학생들이 참가, 성대한식전을 꾸몄다. *이 준공식에 당시의 외무대신이었던 이완용이 참석, 장광설의 축하 연설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어 력사의 아이러니를 맛보게한다. 한.일합방시 오적의 수괴로 나라를 팔아먹은 원흉이 독립문 준공축하행사의 주빈격이었으니 우습지 않은가. 독립문과 함께 서박사의 또하나 업적은 최초의 민간지 독립신문의 창간이다. *독립문 준공과 같은해 4월7일에 발간된 이신문 역시 독립문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의 자주독립정신과 민중계도를 목적으로 한것이다. 이날을 기념하여 {신문의날}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큰 선각자, 서박사의 문과 문, 2대상징과 함께 한 세기를 살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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