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숲 101

입력 1994-03-31 08:00:00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낮게 구름 드리운 이날, 동유는 옆구리에 허록이남긴 바이올린을 끼고 어느 낯익은 강가에 서 있었다.초겨울 가뭄에 수량이 많지가 않았다. 동유는 무릎을 굽혀 강물에 손을 넣어보았다. 얕은 물밑에 조약돌이 손에 닿였다. 의혜와 처음 밖에서 만나 무제비를 던지던 그 자리였다. 저 작은 돌 가운데 그녀가 던졌던, 무제비에 실패한돌이 섞여있을 터였다.

아침부터 구름이 낮게 깔려있더니,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동유는고개를 젖혔다. 작은 낙옆같은 눈송이가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가 곁에 있었으면 눈송이 받아먹기 시합을 할 수 있으련만.

동유는 무심코 악기를 옆구리에 낀 채로 케이스지퍼를 열었다. 그러고 보니한번도 그녀 앞에서 연주를 해본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송구스러워 연주는청할수 없으니, 대신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라대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동유는악기를 꺼내었다. 이상스럽게 이날은 바이올린이 잘 켜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악기를 어깨에 얹고, 이미 악기통에 눈송이가희끗희끗 제법 많이 떨어졌는데도, 무슨곡을 할까 도무지 결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맨델스존을 정하면 포레가 생각나고 포레로 잡으면 비발디가 떠오르는 식이었다.

갈수록 눈발은 굵어졌다. 매운 바람도 간간이 몰아쳤다. 바이올린 위에 쌓인눈발이 쓸려가고, 다시 쌓였다. 동유는 아직 활을 켜지 못하고 있었다. 한두번 튜닝삼아 찍찍 그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안타까운 공백이 얼마나 있었을까, 활을 켜고 있지 않은데도 그의 귀에는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 꿈 속에서 연주했던 선율인가 싶었다. 음표가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그 사이에 의혜가 춤을 추던 그때의선율...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아름다운 나비만 있는 춤이 아니라 흉칙한 번데기와 애벌레가 함께 꿈틀대는 춤이었다. 환희와 고통이, 흥겨움과 비탄이어우러진 한바탕 춤판이었다. 때로는 포르테로 때로는 피아니시모로... 허록의 악기에는 더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무수한 악음의행렬들이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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