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악성-{전쟁퀴즈}

입력 1994-03-30 00:00:00

요즘 두사람이상 모인 자리에만 가면 똑같이 듣는 질문이 있다.[어이, 전쟁 나는 기가 안나는 기가?]{불바다} 폭언이후 남한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해보는 {퀴즈}다.

이번 전쟁퀴즈는 TV같은데 나오는 무슨 장학퀴즈 게임과는 달리 두가지 퀴즈답지 않은 특징이 있다.

우선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는 것과 정답에 따라 수백 수천만명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고약한 문제라는 점이다.

퀴즈를 낸 출제자 입장인 북한지도부조차 정말 전쟁을 해버릴것인지 악에 받쳐 한번 해보는 소리로 끝낼 것인지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기묘한 문제를놓고 온세계가 신경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설마}와 {혹시}가 엇갈리는 위기상황을 두고 정답을 내고 있어야 할한국정부와 미국의 진단이 엇갈리고 있는 것 또한 불안을 보태고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고약한 전쟁퀴즈는 근 열흘째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는 한국국민들의 입맛을 떫게 하고 있다.

{저들도 끝장이 나는데 설마 전쟁을 걸겠느냐}는 낙관론을 펴는 사람도 말끝에는 얼마전에 {땀}을 흘렸다는 사명대사 비석 이야기를 달아 붙인다. 겉말은배포 크게 해도 속으로는 일단 불안하다는 증거다.

여권 가진 사람, 미국 비자 찍어있는 사람, 또 그런게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처자식 끌고 물건너 나가는 코스 스케줄을 떠올려 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반도 위기론은 미국 언론과 UN, 미국 국방부같은 데서 더 시끄럽지 정작 전쟁 피해 당사자인 한국국민들의 표정속에는 이상하게도 심각한위기의식이나 긴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가닥 불안속에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자신감 탓이라기보다 일종의 합리적사고에서 나온 체념 탓일 수 있다.정말 전쟁이 난다고 가정 해보자. 막판에 가면 그들이 지든 말든 패트리어트를 군데 군데 뚫고 나온 스커드와 임진각 바로 건너서 날려보내는 장거리포의화력으로 서울 광화문이나 제3한강교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된다고 치자.그때 2백만대가 넘는 서울 차들이 설 귀성길 때 마냥 사이좋게 나란히 줄을세워 대전으로 빠져 나가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마디로 {터지면 끝난다}는 현대전의 전쟁개념을 이해하는 합리적 사고를가지고있는 이상 내키든 내키지 않든 평온한듯한 얼굴로 체념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불안해하면서도 체념으로 감추고 있는 감정의 이중성이 아니다.

기묘한 퀴즈가 출제되도록 대북핵외교 국면을 이끌어온 미국과 우리정부의정치력과 위기대응자세가 더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그들이 정치와 전략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심각한 위기상황이돌출돼도 국민들이 전혀 불안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속에서 소리없이 풀어나가는 능력을 보일수 있어야 함에도 이번 전쟁퀴즈경우는 전혀 그렇질 못하다.

밉든 곱든 믿고있는 미국의 국방부장관이란 사람은 계속 [한반도의 위기와대결국면이 하반기에는 닥칠지 모른다]는 모호한 발언으로 불안을 공개적으로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북한에 정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명백하게는 모르며, 있다해도 어디에 있고 어떤 운반수단을 갖고있는지 역시 [모르겠다]고말한다.

그렇다면 미국방부장관이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김일성의 이름석자와 뒷목에 혹이 달렸다는거나 안다는 얘기인지 경제제재정도의 압력을 넣겠다는 얘기도 언뜻 들어보면 전쟁까지는 안가는 규제조치로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2차대전때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미국에 도발했을때도 일본은 전쟁을 건 이유를 이렇게 주장한바 있다.

[미국이 먼저 미국내 일본의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를 포함한 무역제재조치등의 경제제재압력을 가해왔기때문에 자구책으로 살아남기위해서 싸울수 밖에없었다]

2차대전 일본의 전쟁구실과 같은 전쟁핑계를 줄 수 있는 성급하고 섣부른 제재방법은 경계해야한다. 전쟁이 터지면 죽는것은 워싱턴의 로버트나 존이 아니라 한국의 우리자신이다. 그래서 끝까지 대화와 평화적 해결쪽으로 방향을잡아야한다.

클린턴과 페리장관은 불안한 말잔치보다 경제제재를 핑계로 일으킨 2차대전을 기억하면서 신중하고 평화적인 퀴즈의 정답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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