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새벽녘까지 밤길을 헤매이다 여관에서 잠을 깬 후, 의혜의 화원에 전화를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오쯤 되었을 시각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허록은 보이지 않고, 방안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새벽까지 마신 술로 어지럽던 머리가 화들짝 깨는 느낌이었다. 늘 오선지나재떨이, 커피잔 따위가 흩어져 있던 방이 아니었던가. 말끔한 정돈 상태로 보아 허록이 한것 같지가 않았다. 밤업소에 가지 않을 때는 목욕은 커녕 수염도깎지 않는 게 허록의 습성이었다. 선영의 내왕이 끊긴 이후 이렇듯 정돈된방은 처음이었다.
동유는 의아해서 연습실로 내려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실인 빈교회당도 방처럼 말쑥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함부로 내팽개치듯 어지러져 있던 방석도 의자위에 놓여져있고 바닥도 걸레질이 되어 먼지 한톨 없을 지경이었다.자신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자 왁스로 닦은 것처럼 무늬결이 살아있는악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의혜가 다녀간 모양이구나, 동유는 가슴이 쿵쿵 거렸다. 역시 깨끗하게 왁스질이 되어있는 피아노로 눈길을 돌렸다. 금이 간 피아노 덮개 모서리 윗부분에 조그마한 쪽지가 하나 보였다. 얼른 쪽지를 펴보았다. 어이없게도 허록의글씨였다.
[동유야, 업소엔 잘 갔다왔느냐? 나 때문에 수고 많았겠다. 내 몸은 괜찮아졌다. 우리 두사람이 넘고 가야할 장애물들은 곳곳에 숨어있구나. 도마뱀 따위가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기몸을 끊는 현상을 자절(자절)이라고 하지?극복과 자절은 진정한 예술인에겐 항시 필요한 의식이다. 새로운 마음으로연습에 정진해주길 바란다. 강희란의 일로 청주에 갔다가 내일 오마. 너를사랑하는 아저씨가]
허록은 동유가 마산의 업소로 가지않고 되돌아와 {그 사건}을 훔쳐보았다는점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동유는 고개를 저었다. 손에서 메모쪽지가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런데, 동유에게 웬지모를 처연한 느낌이 떠오른 것은 허록이 벗어둔 윗도리에서 꺼낸 담배를 세 가치째 태우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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