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혜가 사라져버린 골목 초입에 동유는 서 있었다. 현실이면서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몽롱한 느낌만이 전신을 훑어대었다. 허록아저씨가 정말 의혜를벗기고 있었단 말인가. 왜 그랬단 말인가. 아니, 그 이유라는 것이 도대체될 법한 소리인가. 하지만 그런 속외침은 단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브래지어를 뜯겨 가슴살이 보이고, 치마가 벗겨져 허벅지가 드러났던 정황이 불가사의한 화면처럼 어지럽게 눈앞을 스칠 뿐이었다.동유는 흐무러지듯 주저앉아 곁에 있는 휴지통에 등을 기댔다. 함석으로 만든 휴지통의 싸늘함이 등골에 전해졌다. 누군가 버린지 오래되지 않은 썩은고기냄새가 풍겨나왔다. 불과 두어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자세를 바싹 낮추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세상은 어느것에도 의지할 것 없고 믿을 수 없는, 탐식과 강탈로만 이루어진 황량한 벌판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치밀었다. 메스꺼움에 구토증이 일었다.
동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은, 휴지통 아래다 대고 헛구역질을 윽윽하고 나서였다. 의혜가 어쩌면 자살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한없이 섬세했고 또 그만큼 여리지 않았던가.
그녀가 뛰어들어간 골목을 동유는 뛰어들어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신흥주택가를 돌고 재개발을 앞둔 남쪽 골목길로도 뛰어갔다. 지금은 전신주만오도카니 서 있는 수해전엔 늪지대였던 수도공사쪽으로도 허겁지겁 달려갔다.그대 절망하지 마라, 분노를 거두시라. 여리고 섬세한 영혼은 어떤 것과도바꾸어서 아니되느니... 동유는 속으로 외치면서 골목길을 누볐다. 그러나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캄캄했다. 절망은 밤과 같았고 밤은 절망과 같았다.
이튿날이었다. 화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뒤에 그의 어머니가 받았다.[오전에 강릉으로 갔어요]
[강릉에요?]
[거기 시집간 언니집이 있어요]
전화가 딸칵, 하고 끊겼다. 그 소리가 마치 굵게 찍힌 마침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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