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철학이 탈레스(기원전 624-545)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중국에서는공구(공자:기원전 552?479)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양자 사이에는 약50여년의 시차가 나는 셈이다.그리스에서 철학의 등장은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던 바커스 숭배 등, 원시적종교의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이 초기 철학자들은 정신주의, 또는 초월주의의 영역으로부터 떠나 보다 굳건한 토대를 발견하려고하였다. 물론 이러한 범주 속에 당시의 모든 철학자들이 놓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태도야말로 당시에 새롭게 출현한 정신의 특질을확정하여주는 중요한 인자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스 철학 초기의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그 굳건한 토대를 그들이 발 붙이고 살고있는 물리적 세계속에서 발견하였고, 당시에 그들에게 주어져 있었던 과학적 지식과 스스로의이성능력을 동원하여 그 세계 속에 놓여져 있는 가장 확실한 것,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원적 자료를 찾아 나갔다. 그러니까 그러한 지적 상황은 바로'인간적 능력을 동원하여 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세계'를 범주로 삼아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게하여 확보된 확실성이라고 하는것은 시대적인 한계 속에 놓여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중국에서는 철학의 등장은 정신주의의 상대적 철저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가 제기하여 주고 있는 여러 인간적 행위들을 어설프기는하지만 일관된 도덕주의의 틀 속에 세우는 것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주의의 철저화라는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여러 인간적 행위들을 그 연원이 되는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구분하여 내는작업이기도 하다. 공구는 '논어'속에서 '귀신과 같은 괴이한 것'이나, 그가잘 모르는'죽음'같은것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공구의 태도는결국 스스로의 지적 탐구라고 하는 것을 인간적 범주 속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태도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가 인간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을 그 연원이 되는 은왕조 이래의 종교적의식으로부터 분리해 내서 확실한 현실적 기조 위에 세우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서양에 있어서든 동양에 있어서든 새로이 등장한 지적 흐름은 인간적영역의 확보와, 그 영역 속에서 인간적 능력을 도구로 삼아 보다 확실한 것을찾아나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의지적탐구의 영역을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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