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춤추는 숲

입력 1994-03-23 08:00:00

동유는 자지러질 것 같았다. 현기증이 핑 일어났다. 발목까지 내려진 스커트위로 드러난 흰 허벅지 살결이 형광불빛을 받고 있었다. 그 순간, 눈부신 아름다움인지 처연한 안타까움인지 구별할수 없는 기이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웬지 모를 공허감 때문인지 몰랐다. 그만 눈을 감았다. 삼각팬티가 벗겨지고 엄지와 검지가 없는 허록의 손이 그녀의 양쪽 허벅지가 이어지는 그 사이로 덮쳐가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안돼. 안돼....

동유는 쓰러지듯 창 앞에서 기어나왔다. 오금이 흔들렸다. 곁의 전신주에 머리를 박고 섰다. 왜 브래지어를 벗기기 전에 창안으로 뛰어들지 못했는가. 스커트에 손을 대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었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자책감이 더욱 사무치게 들었다.

청소 리어카에 실려 있는 빈병 하나를 집어들었다. 병목을 쥔 채로 전신주에다 후려쳤다. 병목만 손에 남고 병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깨어진 파편 하나가손등에 박혔다. 제 가슴을 후려치고, 제 심장에 유리파편이 박히는 것 같았다.

이제 저 안을 들어가서 무얼 한단 말인가. 허록이 그녀의 몸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황량하고 텅빈 자신의 가슴만 느낄 뿐이었다.동유는 이제라도 들어가겠다는 의식도 없이 주춤주춤 청소 리어카를 돌아나왔다. 그때 지하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얼른 몸을 숨겼다. 의혜였다. 다소 머리가 흐트러져 있고 옷매무새도 단정치 못했다. 순간이상스러운 안도감이 스쳤다.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아무일 없었던양 단정하고 말쑥하게 머리를 빗고 옷을 여미고 나왔더라면 달려가 뺨이라도 후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주스러운 사내의 이기이고 모멸스러운 한가닥 자기위안이었다.

의혜가 화원과는 반대쪽으로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뒤를 따랐다. 십여분쯤 걸었을까. 의혜-, 하고 동유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뒤를돌아보았다. 동유는 그자리에 멈췄다. 그녀가 얼굴을 싸안고 옆쪽 골목으로뛰쳐들어갔다. 그녀가 잠시 서있던 자리에 어둠 한 덩어리가 검은 조각처럼서있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