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악성-대구탈출과 행복권

입력 1994-03-17 08:00:00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국민학교시절 3.1절이 되면 곧잘 부르던 노래다.

어제 3.1절 75주년을 맞았다.

남한에서 {3.1절}하면 의레 33인이나 유관순을 떠올린다.

그러나 3.1절에 동풍신(동풍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낯선이름, 처음들어본다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 일것이다.

동풍신은 누구인가. 출생지는 함경북도 길주(길주), 3.1만세운동이 있었던1919년 3월1일 유관순과 같은 16세의 소녀였다.

아버지는 유관순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농민출신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경(일경)에 피살된것도 유관순 집안처지와 똑같다.

친일파 면장 집을 불사르고 투옥된후 17세에 순국한것 역시 공통된다.우연의 일치 치고는 두분의 순국의 길이 너무나 닮아 있다.그러나 해방후 남북분단과 함께 남한의 교과서에는 북한 애국 소녀 동풍신의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회갑이 가까워오는 해방둥이 전후 세대들조차 오직 유관순 노래밖에 모른다.그다음 젊은 세대들은 더더욱 캄캄할 수 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나 정치라는것이 때로는 민족 항쟁의 역사까지도 지워버리고 감춰버리는 것일까.항일에서 극일로 이어오는 역대 정부와 정치지도자등의 대 일본 대응자세는여러차례 굴절을 거쳐왔지만 기본적으로는 대일국민정서라는 민족감정의 뿌리를 유지해온 셈이다.

문민정부의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방침 같은것도 그런 반일감정의 흐름에서 나온 발상일 것이다.

그런데 어제까지도 아시아 최대 석조건축물이라는, 그래서 일부 예술가들이아깝다고도 하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해가면서까지 유관순과 동풍신이 보여준 민족정신을 다시 내보이겠다는 호기로운 문민정부가 난데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가요 무대를 공식인가해줘 다수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광복후 어느 정권, 어느정부도 허가하지 않았던 일본가요 콘서트를 총독부까지 철거하겠다는 문민정부가 최초로 공식공연허가를 내준것이다.지난주말 일본 엔카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부른 가수 계은숙 그녀는 일본인이 아닌 바로 한국의 낭자였다.

일본에 건너가 초일류 스타가 된 그녀의 서울 입성(입성)공연을 보면서 유관순 동풍신 두분과 계은숙에게서 느껴야 하는 역사와 세월의 놀라운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고 소화시켜야만 될 것인가.

이미 우리는 일제 마일드세븐 담배의 급속한 시장점유율에서 {조센징}임을자인했고 일본 TV모방 일색이라는 종속적 방송모화에서 역시 신사참배하듯,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은 표절한 일본만화와 닌텐토 전자게임에 절어져 가고 있다.지천으로 널린 노래방에서 밤마다 일본 가라오케비디오를 들여다보며 악을풀고 있는 군상들은 또 누구인가.

문민정부가 일본 영화 비디오 만화의 단계적 수입허가 얘기를 국민 눈치보면서 에드벌룬 띄우듯 안해도 이미 우리는 국제화개방화의 바람이 불기도 전에벌써 위기의 순간에 먼저 와있다.

계은숙 같은 가수가 백명이 건너오더라도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자신감만 있다면 굳이 겁내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것도 없겠지만 그것도 아니다.정부스스로가 구총독부 건물부터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패배적인 발상을 하고 나섰던 것도 자신감 결여의 예로 본다.

일본 엔카 공연을 허락하고 일본영화만화비디오를 수입개방해도 여유만만할만큼 자신감이 있다면 그까짓 일제시대 건물 하나쯤 더 남겨둔다고 대수로울것 없다는 인식의 일관성을 보여야된다.

일제건축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면 4천만이 애용하는 경부선철도로 걷어내고 우리손으로 다시 깔아야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어느쪽이 옳고그르든 우리는 3.1절을 보내면서 유관순과 동풍신소녀열사등의 항일정신과계은숙의 엔카공연을 동시에 생각해보면서 또 어차피 문을 열고 맞싸워야할상대를 겨눠봐야할 시대인것도 인식해가면서 총독부 철거와 일본영화수입과항일역사수정교육의 {문제}에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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