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춤추는 숲

입력 1994-03-14 00:00:00

[도저히 여기선 안되겠어. 우리 첫키스에 이런 오염된 공기를 스며들게 할순없어. 다음에 가린산으로 가]동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얇고 보드라운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 허투루 할바에야 첫키스를 아껴두는 편이-차라리 성적인 모호스러움을 견디더라도-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방둑을 걸어나오면서 그녀에게 바칠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노래소리를 그대에게 전하리/고요히 잠자는 나의 사랑아/....../하늘의달은 밝고 바람은 고요한데/나의 노래 소리 그대에게/......(토스티의 {세레나데})

그가 노래하는 동안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노래를 마치자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순간 그는 처음 느꼈다. 바지속에 있는남성이 부시시 몸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정말이지 그녀를마주보고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녀에 대한 성적열망의 모호성이 선명함으로 옷을 갈아입는 순간이었다.

동유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희한한 변화였다. 바로 어저께까지만 해도, 그녀가 화원에 앉아 있는걸 유리문 밖에서 들여다볼 때면 흡사 오르가즘이라도 느끼듯 타오르던 성적 열망이, 유리문을 여는 순간 무슨 신비한 자외선이라도통과한듯이 성과 관계된 일체의 감정이 사그라져 버리지 않았던가.동유는 그녀의 손을 잡고 깍지를 껴보았다. 맞닿인 손가락 사이사이의 보드라운 감촉에서 정말이지 짜릿한 성감이 피어올랐다. 택시를 기다리다 동유는그녀를 조금 떼어놓고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그녀도 짐짓 리듬체조 선수처럼율동을 해보였다.

동유는 이제 얼마후면 아마도 그녀의 몸 전체가 성감대 덩어리로 변할 것임을 예감할수 있었다. 아니 그녀와 자신사이의 공간적 거리마저 성애의 상상으로 가득차게 될것 같았다.

입맞춤도 해보지 못한 그날 하루였지만 그에겐 잊지 못할 날이었다. 그뒤 이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 삭풍이 몰려들면서 조금씩, 혹은 급작스럽게 일어난변화를 생각하면 그날은 참으로 소중한 기억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은 깊고 회상의 족적이 뚜렷할수록 앞날의 여정은 힘겨운 부하를 받기 마련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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