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사이비종교와 광신도

입력 1994-03-04 00:00:00

어떤 식으로든 우리사회의 한 치부를 고발, 개선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던 한종교문제연구가가 애매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 방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했던대로 그 범인은 피살자의 그와같은 노력을 곡해하고 또 직간접의 피해망상에 시달렸던 사람임이 드러났다. 아직도 범인의배후세력 내지는 연루자및 범행은닉자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범행동기야 어떻든 그처럼 포악한 살인행위를 계획적으로 저질렀던 것만으로도 범인은 이미 신자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독단과 배타성**

물론 광신도의 악덕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비단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어느 특정종교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예외적인 사례도 아니다. 다만 금품갈취와 특정교리에 대한 우상숭배가 현대사회의 속성상 그 어느때보다도 더 집요하고 다발적이며 만연해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흔히 기독교로 지칭되는 프로테스탄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타종교에대한 배타성을 유일신 사상에서 찾고 있고, 그 점은 대체로 수긍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독단과 배타성은 종교뿐만이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개혁' 자체가 안고 있는 속성이자 자기함정임은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긴 해도 기독교의 거룩한 복음주의만은 그 너그럽지못한 '이단홀대'사상을 넉넉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곧 청빈, 정결, 순명의덕행을 실천강령으로 아우르는 기독교의 복음주의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그위의가 장엄하고, 실제로 그만한 위업을 뚜렷이 아로새긴 예를 지구상에서달리 찾아볼 수 없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상숭배 행태만연**

그런데 이 복음사상의 실천에서 한국기독교는 또다른 '개혁'이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다는 공논이 나돈지도 오래되었다. 단적으로 '기복신앙' 같은 다소의 폄훼가 일상용어로 정착된 현상도 그 좋은 예이고, 기독교의 그 갸륵한 청교도사상으로 오로지 '잘 살고 보자'는 몰지각한 사회풍조에 일대 메스를 가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기독교계의 직무유기였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따라서청교도사상의 대극점에 졸부들처럼 거들먹거리기에만 영일이 없는 광신도의온갖 추태, 금품수수, 우상숭배 행태가 만연한다.

누구나 알듯이 종교가 아편이라고 지적했던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그래서 그는 만인평등사회의 필연적인 도래 이론에 종교나 민족같은 함수를 상정하지않은 지적 오류를 스스로 과부하했다. 당연히 그의 과학적 공산주의는 허무망상으로 사그라들고 말았고, 종교와 민족이 더 오롯이 살아남았음은 오늘의 세계정세가 가르쳐 주는대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어떤 제도라도 철저히부정하고 배타적인 권리를 독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광신도의 소행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어떤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어떤 수단도 용납된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과대망상일 수 있고, 그런 반사회적인 아집은 우선 자기자신에게도 불행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해하고 사해동포주의에도 분명히위배된다.

**자기참회의 필요성**

기독교의 위대성은 그 메시아사상에서도 찾을수 있지만 사해동포주의가 더압권이다. 바로 그 점에서도 기독교는 어떤 다른 종교와도 구별되고 그만큼거룩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이비종교가 만연하고 그 피해가 막심할수록기독교의 복음주의, 메시아사상은 더 찬연한 영광을 누릴 게 틀림없다. 물론기독교의 자기참회가 더 올곧아야 한다는 담보가 있어야만 그렇다.믿음이 기득권의 무분별한 행사나 그 과시에 있다는 말씀이 성경의 어느 구석에도 없다는 것만 보더라도 사이비종교의 정체와 광신도의 행패가 얼마나가증스러운지 대번에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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