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춤추는 숲

입력 1994-02-23 08:00:00

알몸을 보고 싶다는 동유의 말에 강희란은 한동안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말없이 짧은 한숨을 쉬더니 소매 끝을 잡고있던 동유의 손을 가볍게 떨치고는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연두색 셔츠가 그녀의 가슴 위로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동유는 눈을 감았다.[이것마저도 벗어요?]

다소 힐난조인 그녀의 말에 동유는 눈을 떴다. 가슴에 커다란 띠처럼 브래지어만 걸려있었다. 동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브래지어를 벗어버렸다. 마치 오래되어 더럽혀진 붕대를 떼어내는 듯한 미련없는동작이었다.

동유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지만, 꿈에서 본 의혜의 유방을 눈에 그렸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황홀한 나상(나상)앞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영롱한 빛깔의 음색을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꿈결에 노니는 듯한 몽롱한 표정으로 동유가 잠시 숙인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아,동유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젖가슴에 시뻘건 줄들이 죽죽 나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가죽혁대로모질게 매맞은 피멍임을 알수 있었다. 윗옷만 벗었을 때는 왜 진작 눈에 띄지않았을까. 검붉은 자국들은 유방만 아니라 배와 옆구리를 가리지 않고 마구뒤얽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허물이 벗겨진채 피투성이가 된 배암들이 한데 엉겨 꿈틀거리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자, 이제 보았어요? 그 새끼가 심심하면 절 후려팬 자국이죠. 어저껜 거기(동유를 가리킴)말처럼 허록아저씨랑 어떤 관계냐며 혁대를 휘둘러 대었어요.]그녀의 처연해진 목소리가 술래술래 풀리어 방안을 떠돌아다녔다.이미 의혜에 향한 사무침이나 성적인 대리만족(대리만족)따위는 까맣게 잦아들고 말았다. 그 위에 자리잡은 것은 그녀의 참담한 삶을 목격한 듯한 숙연함이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녀의 몸을 훔치겠다는 자신의 욕망이 송구스러워말그대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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