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여행-근원적 진리 추구할때 성립

입력 1994-02-15 08:00:00

철학적 사유는 생각의 철저화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 생각의 철저화는 생각의 한우물파기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모든 한 우물 파는 생각이 다 철학적 사유의 영역 속에 놓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여러 골똘한 생각들 중에서 철학적 사유로평가될 수 없는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한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고 하여 보자. 그는 침식을 잊으면서까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생각에 골몰하여 있다고 하자. 그것은 분명히생각의 한우물파기의 모습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철학적 사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어떤 사람이 1950년 6월25일에 진실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알기 위해서 골몰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보자. 그 사람은여러 서적들을 섭렵하기도 하고 여러 증언들을 청취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고 하자. 그 사람의 생각은 분명히 생각의 한우물파기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그의 생각을 우리는 철학적 사유라고 말 할 수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생각의 한우물파기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철학적 사유의 범주속에 놓여질 수 없는 여러 생각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어째서 철학적 사유로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들이철학적 사유가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철학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생각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두가지 사유의 예 중에서 앞의 것은 현실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유라고 할 수 있다. 뒤의 것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돈 버는 방법의발견이나, 사실의 확인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철학적 사유의 범주 속에 집어 넣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적이고 기능적인 것들은 철학적 명제가 될 수 없다.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되는 철학적 명제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어야 한다. 철학적 사유의 목표는 진리에 있다. 진리의 발견이나 진리의 구현이 철학적 사유의 목표인 것이다. 직접적으로 이것을 대상으로 하는 사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궁극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모든 명제들은 철학적 사유의 범주 속에 포함될 수 있다.이를테면 앞에 들었던 것들이라 하더라도 돈 버는 방법이나 6월25일에 일어난사실의 확인에 목표를 두지 않고, 그것들이 인생이나 역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명제와 연계되어서 사유된다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할 경우에는 그것들은 철학적 사유의 범주 속에 들어 올 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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