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두개의 코리아

입력 1994-02-04 08:00:00

미국 콜로라도대학 정치학교수인 스티브 첸은 지난 5세기 동안 국제정치를지배해왔던 북대서양 연안국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첸이 말하는 북대서양 연안국들이란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등인데 이들 나라들은 근대 르네상스 이래 차례로 근대사의 패권을 잡아왔으며 현재에도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태평양 세기의 새벽" 그러나 첸은 그의 저서 {동아시아의 력동성(East AsianDynamism)}에서 다가오는 21세기를 {태평양의 세기}로 규정하고 지금은 {태평양 세기의 새벽}이라고 보고있다.

첸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많은 정치인, 기업인, 군사전문가, 언론인들은오래전부터 이 아시아의 력동성에 주목해왔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을 다연안으로 가지고 있는 미국은 지금까지의 대서양 시대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21세기를 대비하여 태평양 국가군에 끼어들고자 안달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APEC)}창설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첸의 지적대로 동아시아는 80년대의 10년간 경제성장률이 서유럽보다2배이상 높았으며 무역규모 또한 서유럽을 이미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그런데 이 다가오는 {아시아의 시대}를 우리는 {두개의 코리아}로 여전히 나뉘어져 맞을지도 모른다.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안 그럴 수도 있다. 즉 통일된 민족으로서 21세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지니기는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주체적,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우리 내부의 강력한 의지와도전이 전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이냐, 분단고착이냐 하는 것이 여전히외부적 요인에 더 의존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적있는 세계화를 필자는 미국 남가주대학 {동아시아 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으로 약 반년을 지내기 위해 열흘 전에 LA로 왔다. 비행기 속에서 미국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하면서 국적란에 그냥 {Korea}로 쓸까. {S.Korea}로 쓸까를망설이다가 결국은 {S.Korea}로 썼다. 공항에서 혹시 {North}냐 {South}냐를물어보면 짧은영어실력에 당황할까봐서 였다.

앞으로 미국 연구소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미리 가정해봐도 {두개의 코리아}가 골치를 썩일 것 같다. 북한은 나에게 과연 무엇인가. 두 개의 조국인가,아니면 적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국인가. 영삼정부는 그 어느 정권보다 더{세계화}{국제화}의 대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 느낄 수 있었듯이 국제정치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타률의세계화는 우리를 세계화 속의 아웃사이더로 만들고 있다.

우리 민족의 근세사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타률적 역사의식}과{변방의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족분단 또한 이러한 낡은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김영삼정부의 {세계화}가 참으로 주인의식을 갖춘, {국적있는 세계화}가 되려면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보다 전진적, 적극적으로 부딪쳐야 한다.{자률의 역사} 세워야 우리가 {두 개의 코리아}를 초래한 {타률의 역사}를{자률의 역사}로 돌려세우고 우리의 힘으로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데 보다 많은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좀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지금보다좀더 나은 소비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아시아의 세기}에 우리는 또한번 {중심지 속에서의 변방}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난 연말에 단행된 통일원장관 경질은 김영삼정부가 민족문제에 보다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영삼정부의 {세계화}는 보다 차원높은 역사의식으로 승화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성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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