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씨전의원사건}전말

입력 1994-02-02 00:00:00

{현역의원 독직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박재규의원사건은 여소야대시절인 지난 89년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자기 불거져나와 처음부터 그 배경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설이 꼬리를 물었다.다시말해 여소야대 정국에서 코너에 몰린 6공정권이 정국돌파의 한 수단으로당시 통일민주당소속인 박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정치공작설이끈질기게 나돌았다. 나아가 고발경위나 수사.재판과정을 둘러싸고도 숱한 의문을 남겼다.

때문에 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 사건에 지역구라이벌인 배명국의원(민자)과 당시 청와대민정비서관인 김영역의원(민자)등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밝혀져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후 권력의 잘못된 행태에 의해 왜곡됐던 온갖 정치적 사건에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왔고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박전의원은 89년9월 자신의 비서관이었던 전대월씨에 의해 독직혐의로 고발돼 영장이 청구됐으나 국회가 법원의 구속동의요청서를 처리하지 않고 폐회,그해 12월 영장이 기각됐다가 이듬해인 90년 2월13일 검찰의 영장재청구로전격 구속됐다.

구속시점이 3당통합직후였다는 점에서 당시 김영삼민자당대표의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 의도가 있지않나하는 의혹도 제기됐었다.당시 그의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알선수재)혐의.

국회농수산위원이란 신분을 이용, 농약관리법 개정과 관련해 한국식물방제협회 이건녕회장으로 부터 2억1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농협중앙회에 압력을 넣어대전 신생정신병원장 박상국씨에게 5억원을 대출해준 대가로 1천5백만원을받았다는 것.

박전의원은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후 1년2개월을 감옥에서 보내다 지난91년 여름 가석방됐다.

박씨는 이후 구속집행정지의 상태로 14대총선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3.24총선직전인 92년3월12일 대법원의 형확정으로 그마저 무산됐다고 밝혔다.그는 현재 구속이후 4년동안 방황을 거듭했던 자신의 심경을 묘사한 {자살여행}이란 자서전을 집필하는가 하면 금성전선 인천제철 동양물산등 대기업체를다니며 사원연수 강사로 소일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박씨는 묘하게도 김영삼대통령의 측근으로 동해후보매수사건으로 한때 같은입장에 놓였던 서석재전의원의 생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전의원과 가끔 만나 자신의 진로문제를 상의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한많은 약속의 땅인 지역구(진해.창원)에서유권자의 심판을 받고싶다]고 정치재개의사를 분명히했다.

그러나 양심선언을 한 전대월씨에 대해서는 [안기부프락치로 서울대에서 학원사찰에 관여했던 사람으로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갖고 내게 접근해왔다]며[타격은 심하게 입었지만 회복은 느리다]며 여전히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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