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을 다시 만난 일은 기적의 힘을 빌지 않았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뒤 {뽀이}생활을 한 마산 00동에서 허록을 만나 서울로 대구로 생활터를 옮기고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였다. 아마 열 일곱살 때였는데, 허록과 부산에서기억도 희미한 무슨 일 끝에 목욕탕에 들렀다가 출입구앞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는 김봉길을 만났다. 동유보다 한살이 많았던 그 봉길이 선영의 소식을전하는 것이었다.[선영이도 중학교를 마치고 거기서 나왔어. 지금은 칠성동의 넥타이 공장에있는데 밤에는 야간학교엘 다닌다더라]
거의 십년 가까이 되어 만난 선영은 얼굴에 여드름이 툭툭 불거져있고 가슴도 봉긋한 열 여섯살 처녀가 되어있었다. 둘은 그날 해가 저물도록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걸었다. 떨어진 시간과 거리만큼 대화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지만 몸짓으로 통하는 언어들이 있었다.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뭔지 알아?]
금호강변에 앉아 동유가 자랑스레 입을 떼었다.
[응. 기타보다 작은 악기잖아]
[나 그거 잘 켠다. 이렇게 말야]
동유가 바이올린을 켜는 시늉을 해보이자, 선영은 까르르 웃었다. 선영은 동유가 {마태의 집}에 남겨놓은 만돌린과 딱지보따리의 추억을 얘기했고, 동유도 중국집에서 매맞은 일이나 달밤의 그리움을 하나씩 꺼내보였다. 그후 선영이 공장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었다. 이듬해 봄날엔 교외로 나가모내기 하기전의 들녘에 앉아 선영의 볼록한 가슴을 엄지와 검지로 만져보기도 하였다.
동유는 갑자기 선영이 보고싶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스러웠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녀에게도 의혜에 못지않은 어여쁨이 곳곳에 있었다.다소 뭉턱히 잘리워진 입귀가 순박하게 보이고 눈물이 글썽이는 듯한 눈,귀밑의 보송보송한 솜털과 흰 피부.
동유는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 두었다. 불쑥나타나 선영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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