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도 획정않고 후보물색 나서

입력 1994-01-25 12:51:00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아직도 반쪽자치다. 지방의회가 구성돼 있으나 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끝에 내년에 단체장 선거가34년만에 다시 치러진다. 그러나 정부의 준비소홀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할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행정구역 개편을 통한 자치구조차 제대로 획정못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연초에 민자당은 서울시 분할 등 행정구역 개편안을 끄집어냈다가 야당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자 슬그머니 후퇴했다. 김영삼대통령도 현행 행정구역대로 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할 방침임을 천명, 행정구역개편 시도는 자취를감추었다.

이어 지난 12일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정치적 파장때문에 여야가 입장차이로미묘하게 대립하고 있는 서울시 등 광역행정구역은 개편을 미루더라도 기초행정구역은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돼 행정구역개편론이 다시되살아났다. 행정구역 개편론이 부활했으나 여야협상과정에서 어떻게 획정할지 미지수다. 행정구역 개편안이 확정되더라도 전면적인 개편은 힘들다. 시일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체장 선거의 기본사항인 자치구 획정문제 하나 확정하지 못하면서여야정치권은 단체장 후보물색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민자당은 김영삼정권의 중간평가로 간주, 선거 치를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고 민주당은 주류.비주류간의 당권경쟁에 매몰돼 행정구역 개편등 지자제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는 커녕 정부.여당에 끌려가고 있는 형편이다.

지자제 선거 주무부처인 내무부는 등떠밀려 해야하는 선거인 탓인지 단체장선거가 1년여밖에 안남았는데도 우리 자치제의 제반 모순을 점검할 지방자치기획단 구성등 사전준비는 뒷전이다. 내무부가 가만있으니 자치단체들도 수수방관이다. 공연히 분수를 모르고 나섰다가 내무부의 미움만 살게 뻔하다는 것이다.

내무부는 해야할 일은 제쳐두고 오히려 한술 더떠 지난 13일 민선단체장을내무부장관의 징계요청으로 해임시키는 징계안까지 마련하는 등 제몫 챙기기에만 바쁘다. 국민이 선출한 단체장도 행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멋대로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행정편의주의와 부처이기주의의 극치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원등 현행 지방자치법의 개정을 바라고 있는 관계자들은 이에대해 "지방자치 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주범이 내무부"라면서 "민선 단체장을 행정부가마음대로 바꾸려면 단체장을 지금처럼 임명직으로 그대로 놔두지 선거는 해서 무엇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민선 단체장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내무부가 지방자치제 준비를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오히려 현행 자치법을 개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지방직 공무원으로 임용하도록 돼 있는 부지사와 부시장.군수를 국가직 공무원으로 임명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도 우리 지자제의 문제점은 부지기수다. 행정구역 개편문제만 해도 현재 여야가 추진하고 있는 인구 10만 미만 시군지역의 통합만으로는 지방행정의 효율을 높일 수 없다. 교통.통신망의 발달로 생활여건이 급격히 변했는데도 수십년전의 행정구역을 고집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는 여론이다.더욱이 우리 자치단체들의 재정자립도는 형편없다. 심지어 10%대의 자립도를지닌 자치단체도 수두룩한 실정이다. 그래도 정부는 자치단체로의 지방세 이양등 지방세원의 확보방안 마련은 외면하고 있다.

기초및 광역자치단체간의 역할분담도 명확하지 않다. 역할이 명확히 분담되지 않으면 책임소재도 불명확해진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한배분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중앙정부, 특히 내무부가 보다 많은 권한을 갖겠다는 속셈인 것은 분명하다.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에 권한을 넘겨주지 않을 경우자치시대에도 중앙정부가 그 부담을 혼자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일본 등 우리보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랜 나라들도 많은 시행착오를경험한 끝에 여러차례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등 자치법을 개정해왔다. 뒤늦게지자제를 실시하면서 우리가 그들의 시행착오경험을 답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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