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유하는 주체}로 존재한다. {사유}는 물론 인간의 정신활동의 한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 나는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고, 동물은 {반응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나이 말은 인간이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만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라는 존재론적 특성은 정신활동의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활동은 그 동물적인 측면과 인간적인 측면을 겸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양자는 사실 복잡하게 연계되어서 수행된다.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과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은 {어떤 하나의 정신활동}의 수행과정에 같이 참여한다는 말이다.결과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수행된 {어떤 하나의 정신활동}을 놓고 볼 때, 그것이 전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사유하는것}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냐하는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여 말하기는 곤란한 문제이다. 우리가 {결과로서의 어떤 하나의 정신활동}을 놓고 측량하여 볼수 있는 것은 다만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과 {사유하는 것으로서의정신활동}이 각각 얼마쯤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 뿐이다.{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은 상황적이고 즉시적이다. 그것이 상황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환경 속에 놓여지느냐에 따라서 반응의 결과가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즉시적이라는 것은 그 정신활동이 단속적인 경험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만 가지고는 체계와 논리가 생산되기 어렵다. 그것은 살아있는 감정과경험적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여 주는 것이기는 하더라도, 그 감정과 자료들을 일관된 질서위에 세워 놓지는 못하고, 그 감정과 자료들을 {나의 철학}으로 틀 세워놓는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이다.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은 혼란스러운 우리의 생각의 더미 속에 논리와 질서를 부여하여 주는 것이고, 의미의체계를 구성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의미를 생산하는 것을통하여 또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생각할 것인가 하는 시각을 조형하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은 감정과 체험들을 제공함으로써 {사유}의단서를 마련하여 주고,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정신활동}은 의식과 시각을 조형함으로써 {반응}의 방향과 내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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