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새 2

입력 1994-01-25 08:00:00

[그동안 부산 언니집에 가 있었어요. 좀 일찍 오려고 했었는데. 그때 다친곳은 어때요?]방에 앉으며 그런 말을 하는 의혜에게서 아련한 향내같은 것이 풍겼다. 공원에서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아이를 막아준 그때 일은 벌써 한달이 가까웠다.팔꿈치 상처를 손수건으로 닦아줄 때 훔쳐보았던, 겨드랑이 속으로 숨어드는흰 살결이 그의 밤잠을 얼마나 설치게 했었던가. 커피를 한잔 대접하는 동유의 손이 자못 떨렸다.

[제가 은혜를 모른다구 괘씸하게 생각하셨나보죠?]

조금 여유를 찾은 그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별 것도 아니고, 상처도 벌써 다 아물었어요. 화원 문은 열지 않았나요?]

[오늘같이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지는 날은 꽃을 사러오는 사람이 없어요]또 한동안 대화가 끊어졌다. 잔을 입술에 갖다대며 그녀는 어색함을 떨쳐야겠다는 듯 화제를 다른 데로 끌고갔다.

[으음, 무어라 부를까......아저씨 바이올린 소리를 첨 들은게 그러니까, 벌써 오년은 되었겠네요. 제가 그때 이곳으로 이사를 왔거든요. 어느날 밤 화원문을 닫으려는데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아마 가을이었지요. 선율에 유혹되었다 할까, 한 걸음씩 밟고 따라갔는데, 이 방앞 옥상에서 무슨곡을 연주하고 계시더군요. 밑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커다란 보름달을 옆구리에 끼고 연주하는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멋대로 아, 월광소나타를 켜고 있구나, 하고 감상을 해버렸어요. 틀렸지요?]

[하하, 감상에 뭐, 맞고 틀리고가 있겠어요?]

동유는 소탈하게 웃었다. 상당히 회화(회화)적인 그녀의 화법이 재미있었다.그보다, 그녀가 자신을 이미 오래전부터 눈여겨 보아왔다는 사실은 내심 그를 놀라게 하였다. 그도 그녀의 화원 앞을 가슴 두근거리며 지나친 것도 몇년은 될 것 같았다. 유리문 안으로 책을 읽거나 꽃을 돌보는 그녀를 슬쩍슬쩍훔쳐보며, 때로는 꽃밭의 사랑이나 꽃밭속의 연주회를 상상하지 않았던가.방바닥에 닿인 그녀의 블루진 엉덩이 곡선에 눈길이 가자 동유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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