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제질서 편승 아태중시-중국하

입력 1994-01-18 12:06:00

93년은 중국에게 대외개방을 확실히 기록한 의미있는 한해였다.지난80년의 천안문 사태로 세계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이후 92년 10월의14기 당대회를 통해 개혁, 개방을 중국의 기본국책으로 삼은 것이 이제 겨우1년남짓.그러나 지난해3월의 전인대에서 강택민 총서기가 국가주석으로 부상, 본격개방노선을 추진한 것은 중국 자신의 의미있는 변화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을기축으로 한 신국제질서 구축이란 측면에서도 적지않은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11월의 APEC 회의에서 강택민주석이 15개국의 수뇌들과 합석했던 사실은 아마 1840년의 아편전쟁이후 서양 열강들에 의해 강제로 국제무대에 끌려 나간후 현재까지의 중국 근.현대사상 처음 있었던 사실로 기록될 수 있을만큼 93년의 중국은 환골탈태의 한해였다.

강택민주석이 그의 국가주석 취임후 첫 외유를 APEC회의 참석으로 잡은 것은우선 중국의 국가 전력과 관련한 대외인식이 과거와는 크게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즉 5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비동맹국과 제3세계와의 이념적인 결속을 통해 실질적인 맹주가 되겠다는 다분히 명분위주의 외교목표에서 아시아.태평양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결국 현실 인식과 함께 중국특유의 실사구시를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세계전략을 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 궤도수정을 하게 된 근저에는 무엇보다 이제 갓 축적되기 시작한 경제력이 커다란 버팀목으로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입지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찾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협력대상은 한국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중국측의 솔직한 인식이다.북경에 주재하는 일본의 한 소식통은 올해의 한.중관계는 지난해와는 비교가되지 않을만큼 밀월시대를 구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92년8월 수교당시 18명이었던 한국대사관의 직원이 현재44명이 된 사실이 북경외교가의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서방측이 이같은 시각을 보이는 이면에는 대체로 두가지로 압축된다.첫째는 중국이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수준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외에 한국의 대중국 접근자세에 있다는 것.

즉 어느 일방만의 이익이 아닌 상호보완을 강조하는 한국의 자세에 남달리열강에 시달려 왔던 경력의 중국인들이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중국의 국무원 회의에서 여객기 생산.통신 현대화.고화질 TV의 합작파트너로한국이 거론됐다는 사실은 많은것을 시사해 준다.

둘째는 중국인들의 다수는 한국이 10년, 또는 15년후엔 한반도통일을 주도할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한.중관계를 한 마디로 {더이상 원만할수없는 관계}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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