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새 활로

입력 1993-12-21 12:37:00

93년은 야권으로서는 시련의 해였으며 최소한 존재 자체만이라도 확인시켜야한다는 절박한 한해였다. 그러나 문민정부출범과 혹독한 사정 개혁한파 속에서 국민당이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허물어진것과는 달리민주당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해를 마감하게 되었다.청와대 독주의 정치실종속에서도 민주당은 집단지도체제라는 과도기적인 지도체제를 택함으로써 제1야당으로서의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반면 국민당은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채 대선 뒤처리에만도 등허리가휘다가 야권공조의 틀속에서 근근이 존재사실만을 인정받는데 만족해야만 했다.재산공개와 사정정국으로 도덕적인 우위를 점한 청와대의 정국독주가 계속되던중 명주양양 보궐선거의 민주당승리는 야권회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그러나 대구보선 후보공천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함으로써 조정기를 거쳐야만 했다. 이후 민주당은 당내 계파간 끊임없는 견제로 당력을 소진해야만 했고 결정적인 대여협상국면마다 계파간 대립으로 적전분열상을 노출하고 회의로 날밤을 지새는등 집단지도체제의 문제점을 노정해 지도체제변경 논의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일관성없는 원칙론과 명분론의 공방속에서도 그러나 이기택대표는 차기주자로서의 행보를 계속하는등 대중속에 이미지를 심는 작업을 계속했다.당내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제화시대에 대비하며 경제회생에 역점을 두자는 소위 '신노선'을 꾸준히 견지해왔다. 이대표의 착실한 접근방식으로 모처럼만에국정감사와 대정부질의등에 대한 여론의 긍정평가를 이끌어내는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쌀시장개방과 대형참사사건의 발생등 주로 외부적인요인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자체 역량에 의해 성취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것이다.

이대표의 지도력을 비롯한 지도부의 한계, 끊임없는 비주류측의 견제, 민자당과는 물론이고 청와대측과 핫라인 하나조차 없이 정국의 해법을 풀어나가려고 하는점 등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것이다.

이대표체제 역시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하는 노력대신 정계를 은퇴한 김대중전대표의 영향권에 그대로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이대표체제의 민주당도 지역당 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는 아직은 역부족이었음을 대구보선에서 입증했다.

당내 세력구도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노무현최고를 최고위원 당선권에 넣으려다 이대표의 오른팔이었던 김정길전최고가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최고가 이대표진영에서 떨어져 나갔고 이부영최고마저 이대표에게서 등을 돌렸다.반면 류준상최고가 이대표라인으로 합류했다. 이대표의 사조직 통일산하회가지난9월 조직정비를 마치고 조직확대에 들어갔고 김상현의원도 민주대학을중심으로 신순범 정대철 이철의원진영과 함께 비주류세를 규합하는 움직임을보이고 있다.

민주당도 내년5월 민자당의 전당대회 시점을 전후해 지도체제변경 문제등 임시전당대회여부를 둘러싸고 주류 비주류간 한판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높을것으로 보인다.

당권경쟁은 이기택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류진영과 역할분담론을 재차 들고나올 것으로 보이는 김상현의원과의 승부로 압축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여전히 김대중전대표의 의중이 승패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이와함께 95년 자치단체장선거를 치르기 위한 당내 정지작업과 재야민주인사의 영입및 이들 세력과의 연대논의가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국민들에게 극도의 정치불신감과 허탈감을 안겨줬던 국민당. 지금은 야성을부각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민주당과의 공조로 바닥치를 벗어나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정주영씨가 대선패배후 보인 일단의 공약 공약화와 이후 보인 행태등은 극도의 정치불신감을 남겨놓았다. 금권을 중심으로 급조된 정당의 자생력이 얼마나 취약하고 재벌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생생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매분기마다 5억여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어 정당의 기본조직은 무리없이가동하고 있고 령남지역등에서는 여전히 가능성을 갖춘 인물들이 포진, 95년자치단체장선거등을 노리고 있어 생각보다 국민당의 정치생명력은 끈질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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