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93-(4) 신농정

입력 1993-12-14 00:00:00

지난9월27일 한국농어민후계자 경북연합회는 작은 성명서하나로 대구시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와 실망을 삭여야했다. 추석을 앞두고 가지려던 신천변 농산물직판행사가 대구시의 장소사용불허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이유가{하천시설물 손괴와 하천오염우려}란 {납득키 어려운} 내용인데다 바로 그장소에서 곧바로 모백화점개장행사는 떠들썩하게 열렸다는 사실이 회원들의울분을 증폭시켰다."1만여 도내 후계자와 농어민을 우롱한 처사다. 냉해와 농축산물 수입개방으로 시름에 잠긴 농어민을 조금이나마 도우려던 도농협력체제는 찾기 힘든 행정이기주의에 무참히 짓밟힌 격이다"

당시는 특히 경북도의 신농정추진대회가 {풍요로운 복지농촌}이란 화려한 구호속에 있은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 그래서 그 아픔은 더 컸던 것 같다.새정부가 지난5월 신농정을 발표하면서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을공약했을 때 농민들은 대체로 큰 박수를 보냈다. 과거 정권과 다른 그야말로획기적이고 과감한 농정개혁을 기대해보자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도처에서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절정의 예가 냉해문제다. 80년이래 최악의 냉해가 전국 논밭을 휩쓸어 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을때 농정당국은 타성에 젖은 피해면적축소에 골몰했다.정확한 피해조사와 그 대책을 통해 영농의욕을 부추겨보겠다는 그런 자세는보이지않았다.

농업전문가들은 "정부의 냉해조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농민들은 신농정이 과거 농업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많은 의문을 느꼈다. 향후5년간 42조원을 쏟아부어 경쟁력.자생력을 갖춘 기술농업시대를 열겠다고 하지만 그 주체인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움직일수있는 방법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신농정에 대한 불신은 냉해-추곡수매-쌀개방으로 이어지는 유례없는 {쌀정국}을 거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농정은 초장부터 죽을 쑤고 있는 형국인셈이다.

신농정의 핵심내용중 하나인 양곡관리제도의 대폭개선이 농민들의 저항을 맞고있는 것도 당연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추곡수매제도를 점차 폐지하고 민간유통기능의 활성화를 통해 쌀값이 실질적인 농가소득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야당.농민으로부터 {식량안보와 농업의 포기}란 비판을 받고있다.20여년 추곡수매제도의 2중곡가제에 익숙해 있는 농민들에게 실질소득을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민간유통기능에 양곡을 맡기겠다는 구체적 대안이 없기때문이다. 더욱이 쌀개방으로 농민들이 좌불안석하는 마당이어서 신농정의 양곡관리제도개선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현재와 같은 양곡관리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합니다. 올해부터 추곡가인상을억제해 차츰 민간유통기능에 맡기려던 정부양정구상이 냉해란 뜻하지 않은복병을 만나 수매가 5%인상 1천만섬수매로 일단 어긋나 버렸습니다"경북도관계자의 말이다.

신농정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특히 이 정책내용이 UR타결이후 몰아칠 상황을안이하게 상정하거나 무신경하게 판단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그같은 지적은 지난7일 경북도가 UR타결임박에 따라 급히 마련한 기초농산물수입개방대책협의회에서도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현재의 농어촌발전계획은 기초농산물수입개방을 전제하지 않았다고 지적, 투자재원의 대폭확대, 농어촌진흥목적세도입 등을 주장했다. 이와함께 개방충격완화의 제도적 장치마련이 다양하게 나왔다. 이 모두 신농정 추진이전에 UR타결이후 상황을 충분히 감안,각계의 토론과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쳤어야 하는 내용들이다."신농정은 당초 농업이란 산업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둔 정책이지 농촌을 살리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UR회오리 즉 쌀개방으로 온 나라가 들끓자 농촌에 대한 갖가지 방안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언론에 쏟아지고있습니다. 우리의 농업정책은 중장기적으로 농업과 농촌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경북대 김상기교수(농업경제학)의 지적이다.김교수는 신농정이 기술.자본을 갖춘 기업농육성쪽에만 비중을 둬 1백만 영세농가의 생존현실을 낮춰본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신농정은 이와함께 발표단계부터 투자재원마련(42조원.경북도 9천5백억원)이불확실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았다. 막대한 예산의 조달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그 개혁적 농업정책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신농정은 이같은 계획의 체계성 부족, 정부의 실천의지 빈약을 드러내고 특히 쌀개방태풍에 휘말리면서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농업전문가들은 "우리쌀시장이 마침내 관세화 10년유예에 최소시장접근 1-4%로 결장난 만큼 우리농업은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농업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라는 절박한 인식제고가 나라전체에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특히 농업과 농촌을 다함께 살리는 새로운 농정마련과 강력한 추진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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