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나 갔잖아

입력 1993-11-20 08:00:00

요즘 고위공직자들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 주말에 골프라도 칠수 있고 돈봉투를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 태평연월이 다시 오기를 소원하고있다. 김영삼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회의에 참석하기 위해17일 미국으로 떠나자 다음날 조간신문의 사회면 만화는 [양주드시러 오세요.개혁 물건너 갔잖아요]였다. 개혁기간중의 억압된 감정을 한컷의 만화가 분풀이하고 있었다.**한여름의 엄동설한**

아니나 다를까, YS의 방미 사나흘만에 공직사회에 번지고 있는 신유행어는만화탓인지는 몰라도 [아이 에스(YS), 물건너 갔잖아]란다. 개혁의 주체와 피주체간에 싹튼 유리(유리)된 감정의 갭은 넓고 깊기만 하여 [개혁은 대통령임기 5년동안 계속하겠다]는 YS의 초지가 일관할지는 사뭇 의문이다.돌이켜 보건대 대통령취임직후인 개혁초기의 사정바람은 의지만큼이나 거셌고 사회분위기는 한여름에 맞는 엄동설한으로 소름끼치는 전율 바로 그것이었다.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만성적 부패에 시달려온 대다수의 국민들은60%에 가까운 YS지지율을 보였고 개혁이란 이름의 사정칼날에 쓰러지는 피투성이를 보고도 박수를 짝짝 쳤다. 어느 누구도 거부하는 몸짓을 보일 수 없었다.사정태풍은 범람하는 강물이었고 바람을 업은 불길이었다.

전.현직 국회의장이 탁사에 길이 남을 고사성어 한마디씩을 내뱉곤 무대뒤로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몰염치한 국회의원, 사도를 깔아뭉갠 교육자, 서슬퍼렇던 검사, 가히 하늘의 별과 맞먹던 무수한 장성등 고위공직자들이 무밭에 무처럼 솎아졌다.

[내 임기동안에 골프를 치지 않겠습니다]이 말 한마디와 함께 시작된 청와대의 칼국수파티는 골프장과 룸살롱 그리고 고급 요리집에 파리를 날리게 했다.공직사회가 꽁꽁 얼어 붙어 버렸으니 장사는 될 턱이 없었다. 그래도 국민들은 대통령의 의지가 강철같으니 이대로 개혁이 지속된다면 몇년이내 선진대열에 서겠거니 생각하며 잘도 참아냈다.

**개혁은 링 반데룽**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개혁은 시작 반년만에 슬슬 꽁지를 내려 버린채 말만[개혁은 계속하겠습니다]로 얼버무리고 있다. 바로 말하면 YS의 개혁은 링반데룽현상에 걸린것 같다. 길잃은 등산가가 길찾아 실컷 걷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게 된다는 것이 바로 링 반데룽이다. 장.차관, 국장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던 중앙부처의 구내식당에는 이제 호주머니가 가벼운 하급직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간부들과 함께 따로국밥집에 나타나던 시장의 모습도 더이상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쇼였고 눈깜짝이 짓이었다.금융실명제 이후 과소비는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골프장은 그새 세대교체가 이뤄져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과 부녀자들로 평일에도 만원이라고 한다. 룸살롱은 카페로 둔갑하여 여전히 고급공무원과 지역유지들을 불러모아비싼 양주를 팔고 있다. 밴드놀이는 단란주점이란 노래방에서 영상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가구.보석.골프.경마등 유흥업소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액은 한달만에 20.4%씩 오르고 있다고 한다. 개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형식만 바뀐 도로아미타불 바로 그것이다.

**국민신뢰 얻어내야**

문민정부가 이 시점에서 해야할 일은 개혁의 지속이 아니라 풀어주는 일이다.국민들이 신바람을 내며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도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을 전제로 한 사정에는 진짜 성역이 없어야하며 정적들을 향한 한풀이식 사정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국민을 무시하는 부필장관들도 하루빨리 교체해야 한다. {국민의,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정치는 바로 국민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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