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용어중에는 희랍신화나 꽃이름, 동물형상에서 따온 갖가지 표현들이 있다. 그중 고스트 어피어런스(유령형상)란 것이 있는데 이는 악성종양, 특히백혈병의 말기에 얼굴이 푸릇푸릇해지는 동시에 울퉁불퉁 솟아오르는 증상을일컫는 말이다.대학병원 수련시절 여러명의 어린이 백혈병 환자가운데 열살가량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입퇴원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자신에게 내려진 너무나도 큰 시련을 체념하고 받아들인듯 했다. 모든 행동이 의젓하고 참을성이많아 모두들 대견해 했다. 그런중에도 몸이 좀 가벼운 날은 환하게 밝은 얼굴로 여기저기 병상을 기웃거리며 싹싹하게 정을 낼줄도 알아 주변 환자들로부터도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운 골수천자, 요추천자, 각종혈액검사, 항암제 투약등을 어떤 때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아프다는 소리 한번 크게 내지 않던 아이였다.
그렇게 투병하던 어느 늦가을, 학회에 참석키 위해 서둘러 아침회진을 하던나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고스트 어피어런스를 보았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듯 했다. 그 아이가 겪은 수많은 날들의 고통이 너무나 가여워 목이 메어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뼈만 앙상히 남은 손을 내밀던 아이의 모습을 뒤로 두고 떠난뒤 다시 돌아왔을때에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고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내가슴에 남아있는 그 얼굴은 분명 죽음의 공포를 벗어난 에인절 어피어런스(천사의 모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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