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전 지금의 한국은행 대구지점 자리에는 2군 사령부가 있었다.대학병원 건너편 자리에 서 있던 사령부 게양대에는 항상 붉은 바탕에 별이그려진 장군기가 펄럭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게양대 앞에서는 사령관 행차가 들락거릴때 마다 매일 네번씩, 많을때는 대여섯번씩 군악대가 줄을 지어군대 행진곡들을 연주 하곤 했었다.아마 지금의 40대 대구토박이중에는 철모와 어깨위에 번쩍거리는 별을 단 새파란나이의 사령관과 마치 거울마냥 하늘까지 파랗게 비치는 철모를 쓰고 금색수실을 주렁주렁 매단 군악대원들을 구경하려고 몰려다닌 기억을 갖고 있을것이다.
나중에 철이들면서 쥐뿔도 이긴 전쟁도 못했으면서 나팔은 되게 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곤했지만 전방에는 휴전선 그어놓고 애들은 피난살이 천막수업하고 있는데 웬 나팔은 그렇게도 신나게 자주 불게 했는지-.어른이 되면서 가끔씩 그때를 회상해보면 우리네 높은양반만큼 {행차 나팔}좋아하는 민족도 없다는 기분이 들곤한다.
솔직히 그 잘난 전통은 불과 몇달전인 6공때 까지도 이어져왔다.대통령이 움직이면 서울종로 바닥이든 시골 새마을길모퉁이든 어른아이 할것없이 {동원}되는 못난전통은 어느새 무감각한 습관처럼 동원하는쪽이나 당하는쪽 서로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동원인력 밥값, 깃발값, 무슨값해서 행차 동원비가 1천만원씩 들었다던 시절에 바로 1년전까지 우리가 살고있었던거다. 순진한건지 우매한건지, 새삼 이번 새대통령의 해외 방문 행차가 간소화 됐다는 얘기 끝에야 겨우 {그땐 왜그랬지}하는 자문을 해보는 꼴이다. 하긴 모두다 우매했기 때문은 아니었다.매일신문이 언론사상 유례없는 관제테러에 의해 인쇄시설을 파괴당하고 사원들이 집단피습당한 속칭 {백주의 테러}사건도 바로 고위층 행차의 관제동원을비판한 사설을 썼다가 당했던 테러였다.
그때가 55년9월14일이니까 38년전 그때의 언론은 그나마 깨어있었다는 얘기다.
{고위현관의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사고 아첨하기위한 관제 동원}을 비난했다가 테러를 당한 언론의 수난과 교훈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여전히 폐습은사라지지 않았고 언론조차도 그후 똑같이 익숙해져 버렸다.그러다 이번에 겨우 문민대통령 행차때 {조촐하게 떠나} {조용히 돌아온다}는 작은 변화를 화젯거리로 떠올리고 있다.
당연한 일을 새삼스런일처럼 떠드는데서 습관과 관습의 틀이 얼마나 무섭고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도 하지만 아무튼 잘한 일이다.
그런데 LA에서는 분위기가 좀 다른것 같다. 모국에서는 현판을 3곳에만 내걸고 수기행렬도 없앴는데 거기는 건물들 벽에 대형 현수막이 내걸리고 환영준비위원회라는 것도 조직했다.
더욱이 {김영삼 대통령의 날}을 제정했다고도 한다.
물론 {자발적}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5공시절의 대통령이 갔을때는 계란을 던지고 뒷문으로 빠져나가게했다던 곳에서 대우가 딴판이 됐다.
해외동포가 모국의 지도자를 사랑하고 반기는 일은 남보기에도 좋다.자발적이라는것도 과거에 자발적이라던 것과는 다르다고 믿어주고 싶다.LA사람들은 모국 농촌에 배추가 밭떼기로 썩어가도, 수돗물값이 63%나 뛰어도, 3{포}에 입체 재난이 터져도, 온나라가 불경기에 푹빠져있어도, 추곡수매가 인상률이 군사정권때 보다도 낮아도 그저 대통령 만나는게 좋기만 한가보다.
차가운 타향살이, 모질고 서러운 시집살이에 친정아버지 나들이 기다리듯 하는 심정들이어서 그럴까.
아마 그들이 반기는 마음속에는 친정 아버지가 멋진 외교솜씨로 위상을 높여주고 돌아감으로써 드센 시집의 며느리같은 소수민족의 처지를 만회 해보고싶은 염원도 깔려있을 것이다.
이번 미국방문은 행차가 검소했다는 지엽적 평가가 중요한게 아니고 외교적성과를 얼마나 거둬 오느냐는 지도력의 결과가 더 중요하다.LA동포들의 환영이 극진할수록 알맹이 없는 방문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쥐뿔도 이긴 전쟁도 못했는데 나팔만 많이 불어줬다}는 힐난을 들을수는 없잖은가. 부디 귀국시까지 편안하고 알찬 여정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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