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은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러시아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1백주기가되는 날이다.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1840-1893). 그의 음악과 삶을 기리는 각종 연주회가 올해 전세계음악무대를 장식하는등 위대한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추모열기는 식지않고있다.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있던 광산기사 일리아 페트로비치와 프랑스계의 어머니알렉산드라 다샤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차이코프스키는 조금은 나약하고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로 어머니로부터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59년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 일등서기관이 된 차이코프스키는 애초부터 관리체질이 맞지 않아 기회있을때마다 오페라와 발레극장을 들락거렸고 1861년러시아음악협회가 개설한 음악수업에 청강생으로 등록한 그는 생애의 변신을모색한다. 그 무렵 음악협회가 페테르부르크음악원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에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원의 학생이 된다. 그로부터 5년후 음악원을 졸업한 차이코프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요청으로 새로 설립된 모스크바음악원의교수로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에서 제2의 음악인생을 시작한다. 86년 첫교향곡이 작곡됐고 이후 많은 작곡과 빈번한 해외나들이, 경제적 후원자 나데즈다폰 메크부인의 등장, 신혼3개월만에 맞은,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파국,동성애 스캔들로 시달리며 더욱 심화되는 우울증등 곡절끝에 교향곡 제6번을 쓴지 얼마되지않아 차이코프스키는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공식사인은 콜레라. 그러나 콜레라사망설은 석연찮은 점이 많아 최근에는 허구로 인식되고있고 자살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있다.
어떻튼 슬라브의 혼을 담은 수많은 교향곡과 발레음악, 실내악, 협주곡, 오페라, 가곡등 아름다운 불멸의 음악을 낳은 음악가로 차이코프스키는 오늘날에도 기억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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