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이후 새풍속도 백태

입력 1993-09-02 00:00:00

{대통령긴급명령}이란 이름으로 전격 단행된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20여일이 지났다. 그동안 금융실명제는 국민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계를 비롯 정치.사회.문화계에까지 그 여파는 강하게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전혀 익숙지 않은 관행때문인지 갖가지 해프닝이나뒷얘기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따라 {실명제 신드롬}이란 신조어가 생겨난데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실명제시대를 지혜롭게 사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실명제이후의 신풍속도 백태를 모아본다.***필수휴대 주민등록증***

0...주민등록증이 실명제시대를 불편없이 살수 있는 필수휴대품으로 등장.최근 남편명의의 통장으로 은행에 돈을 인출하러 간 주부 조모씨.조씨는 주민등록증을 보자는 은행직원의 말에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으나 호주가 남편으로 돼 있지 않아 돈을 찾지 못했다.

결국 조씨의 남편이 직접 가서 돈을 찾게 되었고 조씨는 관할동에 가서 결혼전의 주민등록증을 갱신했다.

은행갈때 통장은 잊더라도 주민등록증은 지참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이젠 본인의 신규통장을 만들때는 물론 무통장입금이나 지로를 사용할때도자신의 실명을 확인해 줄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잊지말고 챙겨야 한다.이런 이유로 일선 동사무소에서는 분실한 주민등록증 재발급과 주민등록등본발부신청이 부쩍 늘고 있다고.

특히 {달동네}로 불리는 지역의 동사무소엔 선거때보다도 이같은 민원이 더많이 접수되고 있다는 것.

이와함께 운전면허증이나 의료보험증과 같은 신분증이 실명확인증명서로 각광.

***"세금 많이 나옵니까"***

0..남편 몰래 자신의 이름으로 적금을 넣어오던 주부 이모씨의 고민."생활비를 쪼개 적금을 붓던 통장인데 이것도 남편이름으로 바꾸어야 합니까.이름을 바꾸면 세금은 얼마나 나옵니까"

모은행 동네지점을 찾은 이씨는 통장을 들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창구직원에게 문의.

이 주부는 "액수가 적어 증여세가 면제되는데다 굳이 남편이름으로 전환할필요가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실명확인후에 밝은 얼굴로 은행문을 나섰다.***"알뜰 우리엄마 만세"***

0...남편과 자녀등 가족이름으로 통장을 몰래 갖고 있다가 실명확인을 통해비밀이 드러나는 경우도 속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오고 있는 김모씨는 평소 아내의 {쫀쫀}함에 큰불만을 가졌으나 실명제실시후 희비가 교차.

김씨는 아내가 자신 몰래 적립한 1천여만원이나 든 통장을 내놓고 고백하자어안이 벙벙.

김씨는 "역시 내 아내는 알뜰 주부다"며 잔뜩 자랑하기도.

대구 대명동에서 과일상회를 하는 주부 이모씨는 알부자로 소문나 있었다.이번 실명제로 이씨의 재력은 어느정도 드러난 케이스.

이씨는 대학다니는 외아들명의로 된 통장을 5개나 공개했는데 그 금액이 모두 1억여원이나 되었다는 것.

이씨의 아들 문군은 "평소 어머니가 근검절약해 저금해둔 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어머니의 은혜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감사.

***수표기피 과민반응***

0...실명제와 별반 관계가 없는데도 괜한 불안감을 표시하는 {실명제 신드롬}현상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수표나 신용카드 불신 사례.

시내 주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정모씨는 나온 술값 8만원을 10만원권 수표로 지불하려 했으나 주인이 꺼려 할 수 없이 현금으로 지불했다는 것.업주가 "수표는 추적당하는 느낌이 든다"며 기피했다는 것이다.다른 모업소 업주는 "예전에는 수표나 신용카드로 받았지만 지금은 꺼림칙해서 가능한한 받지 않는다며 단골에게는 현금이 없으면 차라리 외상처리한다"고 밝혔다.

대구칠성시장서 문구류도매상을 하는 조모씨는 실명제후 거래처로부터 온라인 송금을 금지하고 직접 수금을 다닌다고 한다.

대부분 회사원들의 월급날인 지난달 25일 봉급자들의 수표기피 현상으로 각은행은 평소 월급날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빚었다.

"월급을 찾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현금을 요구, 평소보다 50%정도 늘어난 현금이 인출됐습니다"

모은행직원의 답변이다.

이같은 사례는 괜한 걱정에서 오는 과민반응들.

***1만원권 40배 발행***

0...실명제실시로 1만원권 화폐발행이 크게 증가.

한국은행의 집계에 의하면 실명제를 실시한 지난13일이후 17일까지 5일동안1만원권은 7천11억원 늘어났다.

이는 하루평균 1천4백2억원씩 증가한 것으로 실명제 실시전인 7월의 하루평균 증가액 35억원의 40배에 달하는 규모.

현금거래를 선호하고 수표받기를 꺼리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음이 입증.***너도나도 {큰지갑}***

0...시중에는 각종 금융실명제 특수가 형성.

실명제실시이후 지갑을 바꾸는 샐러리맨이 늘고 있다는 것.수표나 신용카드를 기피하는 업소가 늘어나면서 현금을 전보다 많이 소지하게 된 직장인들이 가볍고 작은 지갑대신 두껍고 긴 재래식지갑을 선호한다는것이다.

이에따라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등 지갑취급업소에선 지갑이 불티나게 팔려 때아닌 특수에 즐거운 비명.

선물용품점에서도 이같은 형태의 지갑을 찾는 손님이 많이 늘어났다고.대구종로 {금고골목}내의 금고판매업소도 특수에 대비하는 모습.업소들은 현금을 보관할수 있는 금고를 눈에 띄게 전시해놓고 손님유치에 한창.

한 업소주인은 "아직 금고판매량이 급증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문의가 잇따르는등 특수가 일 조짐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

금등 보석류값은 연일 오름세로 특수를 실감.

실명제실시전 금소매가는 4만여원이었으나 불과 보름새 1만여원이나 오른5만여원에 거래.

금은방에서 만난 한 주부는 "아들의 돌이 얼마 안남았는데 돌반지 수가 줄겠다"고 아쉬워하기도.

***부동산 눈치보기***

0...반면 실명제실시로 갈곳을 잃은 제도금융권의 자금이나 사채시장의 지하경제자금이 부동산등 실물투기로 몰릴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아직 부동산투기조짐은 없는 상태.

"실명제실시로 부동산경기는 짙은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의 파급으로 투기목적이 아닌 주택이나 상가등 실수요자들의 거래마저도 뚝 끊겼습니다"

대구 만촌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씨의 설명이다.이와함께 특수가 예상되던 골동품.창작미술품등 판매업소도 부동산업소와 마찬가지인 실정.

대구 이천동 모골동품업소 주인은 "문의는 가끔 있지만 실손님은 끊긴 상태"라고 푸념.

***문화예술계도 불똥***

0...실명제는 경제.정치계는 물론 문화계에까지 찬바람.

실명제이후 기업체의 자금난과 몸사리기로 공연예술단체들은 후원이나 광고따기가 한층 어렵게 된 상태.

자금부족으로 공연이 실속없이 치러지고 단원들의 월급지급에도 타격을 받고있다는 것.

미술인들의 전시회도 잇따라 취소되고 있는 실정.

***"제이름 사가세요"***

0...실명시대를 풍자하는 여러가지 유행어가 등장, 폭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제이름을 사가세요} {제한도는 아직 멀었습니다}는 등.

이는 거액 가.차명예금계좌로 속태우고 있는 얼굴없는 사람들을 비꼬는 풍자어다.

또 {통장의 돈을 모두 인출해도 국세청에 통보될 걱정이 없는 사람} {실명전환할 차명통장 하나 갖고 있지 못한 사람} {자기앞수표 사용을 왜 꺼리는지모르는 사람}을 {실명시대의 3불출}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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