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안의사의 복권

입력 1993-08-23 08:00:00

*한국 천주교가 안중근의사(1879-1910)를 83년만에 가톨릭신도로 공식 복권시킨 일은, 종교를 초월하여 온 국민이 두루 환영할 일이다. 안의사가 사후나마 종교적 신원을 이뤘다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의거가 교의와 배치될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김수환추기경은 사제단과 공동으로 집전한 최초의 {안중근의사 추모미사}에서 {안의사를 민족의 자존을 위해 의거한 가톨릭신도}로 공식 복권하고 일제시대 제도교회가 그의 의거를 잘못 판단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안의사는 19세에 영세를 받았으나 침략원흉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를 처단한 행위가 {살인행위}에 해당된다고 단죄, 관심권밖에 밀려났다. 당시의 제3대 조선교구장 뮈텔주교는 신부시절 병인교난(1878)으로 입국하지 못하는등 수난을 겪었던 분이고, 한국순교자들의 시복.시성과정에 도움될 자료를 수집정리한 공적이 큰 성직자였다. *안의사를 살인행위로단죄할수밖에 없었던 뮈텔주교의 시대환경에서 당당히 복권시켜줄수 있는 김추기경의 오늘의 교회사이에는 83년의 시차가 있었다. 안의사의 의거를 독립전쟁에 따른 정당방위로 재해석한 결과다. *안의사가 민족의 기림을 받는 것은 하얼빈역의거뿐만아니라 려순감옥에서 일본 관헌들까지 감복시킨 인격과인간미 때문이었다. 31살, 젊은나이에 법정에서 설파한 동양평화논은 아직도유효하다. 이제 안의사에겐 청년기에 받은 세례명 {도마}가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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