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안동지방에 처음 선 3년제중등교육기관 협동학교를 아는 이는 드물다.일제의 침탈앞에 나라가 기울던 1907년에 섰다 1919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했기 때문이다.비롯 10여년의 짧은 기간 존재했지만 협동학교의 {역사적 의의}는 이지역에선 대단히 크다.
그 의의를 기리는 안동의 인사들이 협동학교가 있던 자리에 기념비를 세우고광복48주년을 맞는 15일 제막식을 갖는다. 안동군림하면천전리 현재천전국민학교 자리다.
그 비문은 {여기는 계몽운동의 본산이며 독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있던곳...} 으로 시작, {모름지기 값있는 인생과 의로운 역사를 찾는 이는 이곳에서 그 지혜를 배우라}로 끝맺고 있다.
높이 5m의 이 비석은 안동대이상무교수(미술학과)의 설계제작, 조동걸교수(국민대국사학과)의 비문작성, 서울대 박병호교수의 글씨로 이루어졌다.협동학교설립은 당시 단재 신채호선생과 교류를 가지며 서울서 신학문을 접한 동산 류인식이 신교육을 통한 구국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이에 호응한 의성김시 문중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천전리에 있던 가산서당을 개수해 신교육기관으로 단장했다. 척사사상이 강한 안동유림들의 반발은 대단했다고 한다.그러나 일제는 구국의 항일정신을 교육하는 이 학교를 그냥 둘리 없었다. 결국 개교12년만에 문을 닫았으며 혁신유림 50여가구는 만주로 집단유랑 길에올랐다.
협동학교의 건학정신은 그뒤 청사에 길이남을 만주독립단체 신흥학교.경학사.서노군정서.통의부등으로 이어졌다. 학계일반의 지적이다.
협동학교 기념비 건립추진위 위원장 류기원씨(74)는 "기념비 설립에 그치지않고 안동이 낳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는게중요하다"며 독립운동자료전시실등 관련사업의 확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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