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정상화

입력 1993-06-15 08:00:00

정치가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활동무대가 국회라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의 구성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이다. 집권당을 여당이라 하고 반대당을야당이라 하는데, 여야의 성격이 아주 모호한 것이다.대통령책임제 국가에서 여당이 대통령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지금 여당의원들의 다수는 김영삼정부의 개혁정책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 보기 어렵고, 오히려 개혁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무슨 불똥이자신에게 튀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그들에게 구린데가 없다면 위축될 까닭이 없을 것이며, 그들의 정치적 소신이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당을 떠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도대체 수십년간의 야당투사가 총재이고 군사쿠데타의 주역이 대표인 정당, 군사정권의 들러리로 온갖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과 군사정권에 반대하여 감옥을들락거리던 사람들이 한 식구로 모여있는 정당의 정치적 정체성(아이덴티티)은 어디에 있는가.

유일야당이라 할 민주당의 성격도 불투명하기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민자당이 민주계와 뿌리를 같이하는 전통야당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치헌금이라는 이름의 돈으로 의원직을 산 사람도 있고 정치건달 비슷한 사람도 없지 않으며 정부의 개혁정책에 내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요즘 항간에는 여야를 분간하지 못하겠다는 농담 아닌 진담도 있다.

원래 정당이란 일정한 정치이념의 실현을 목적으로 결집된 어느 정도의 균질성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데 왜 이처럼 오늘의 우리 정당들은 정체불명.납득불능의 괴집단으로 변질되었는가. 근원적으로 따지면 그동안 이 나라의 소위 정치가 바른 뜻에서 정치가 아니었다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 다양하게 충돌하는 수많은 계급.계층들의 복합적 이해관계를 현실적.합리적으로 추상화하는 장치가 정당정치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의 정당정치는 우리나라에 존재한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오직 권력의 배분에 한몫 끼기위한 이해득실의 계산에 따라 정당의 분포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얼마전 김영삼대통령은 인위적 정계개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개혁은 비정상을 정상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일 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다 좋은 말이다. 과거 5공출범시 인위적으로 민정당.민한당.국민당 따위를 날조하여 1중대니 2중대니 하는 희화적 표현이 생겨났던 것을 상기하면 더이상 정치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사태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민자당의 탄생이야말로 인위적 정계개편의 표본이고, 바로 그것이 오늘 여야관계의 비정상을 초래한 원인 아닌가.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과 10월유신이나 5.17같은 정치단절을 피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김영삼정부가 군사정권과의 정면대결을 통해 성립한 문민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개혁은 일정한 한계성을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개혁에 더욱 힘을 보태어 좀더 근본적 개혁으로 나가게 하기위해서이지 그 반대의 것이 되어서는안된다. 야당인 민주당의 지혜로운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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