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누리호에 정치를 묻다

입력 2021-10-24 19:10:15 수정 2021-10-24 19:53:11

경북본사장
경북본사장

지난 21일 '우주까지 새 세상을 개척할' 한국형 로켓 '누리호'가 불꽃을 뿜으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짜릿한 감동 그 자체였다.

비록 더미 위성(모사체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는 실패했지만, 목표 고도인 700㎞까지 전 비행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절반의 성공이었다.

누리호 개발은 정부 예산 2조 원이 투입돼 12년간 수많은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쏟아부은 피와 땀의 결실이다.

2013년 쏘아 올린 나로호가 러시아 기술을 빌린 것이라면 누리호는 설계, 제작, 발사까지 순수한 한국 독자 기술의 산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누리호 발사는 국내 기업 300여 곳과 항공우주연구원의 인력이 부품 약 37만 개를 제작 조립해 작동시키는 기술을 원팀으로 협력해 적용한 합작품이라는 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단 하나의 부품이라도, 단 한 명의 인력이라도 허점이 있거나 실수를 하면 폭발이나 추락 등으로 로켓 발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같은 상생 협력 모델이 머지않아 한국을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우뚝 세울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성싶다.

우주과학 분야의 이런 눈부신 성장이 큰 기대를 안겨 주고 있는 반면 정치 분야는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 주고 있어 개탄스럽다. 작금의 우리 정치는 발전은커녕 퇴보만 거듭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수많은 기업과 인력은 누리호의 완벽한 작동을 위해 기술 개발에 머리를 맞대면서 상생 협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처럼 우리 과학인들이 누리호를 중심으로 윈윈 게임에 혼신을 바치고 있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오징어게임에만 빠져 허덕이고 있다.

여야를 떠나 상당수 대선 후보들은 '내가 정권을 잡으면 상대 후보를 감옥 보내겠다' '구속시키겠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잡지 못하면 곧 나의 죽음, 우리 진영의 죽음이란 인식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을 지경이다.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오징어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폭로를 남발해 국민들의 인식이나 판단도 흐리고 있다. '일베' '조폭' '소시오패스' '국민들이 개' 등등 저속하고 거친 표현과 비유가 난무하면서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막장 드라마만 연출되고 있다.

여야 대다수 후보들은 국가의 미래를 향한 비전이나 정책은 내놓지 않고, 상대의 과거 행적을 캐내고 의혹을 부풀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극복, 국민들의 편안한 삶에는 안중에도 없고 제로섬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는 정치권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작금의 정치 행태를 보면 여야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하면 지방을 살리고, 어떻게 하면 경제를 살리고, 어떻게 하면 한반도 통일의 물꼬를 틀 것인지 등에 대한 정책 대결과 경쟁에 앞다퉈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서글픈 심정이 앞선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 획득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권 획득도 국민 화합과 행복이란 가치를 외면한 채 상대 진영의 몰락만을 겨냥한 결과물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리호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질주하는데, 우리 정치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치권은 '나만 잘 살면 되는' 오징어게임이 판치는 나라를 원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