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수확할 일손 없어요" 멍하니 들녘만 바라보는 농심

입력 2021-10-24 15:32:52 수정 2021-10-24 19:51:39

외국인 근로자 떠나고, 일당에 대행비도 상승…병해에 농민들 "수확 포기 고민"

20일 경북 안동지역에서 10여 년 째 생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이 자신의 생강 밭을 가르키며 올해 수확에 대해 하소연 하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이상기후가 심해 작물의 병해충이 심했고, 일손 부족과 임금 상승 등으로 농가들이 수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영진 기자
20일 경북 안동지역에서 10여 년 째 생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이 자신의 생강 밭을 가르키며 올해 수확에 대해 하소연 하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이상기후가 심해 작물의 병해충이 심했고, 일손 부족과 임금 상승 등으로 농가들이 수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영진 기자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애써 가꾼 농산물이 그대로 썩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 마음이 아픕니다. "

수확철을 맞은 경북지역 농가들이 일손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고령화된 농촌지역에서 그나마 일할 사람이라곤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들의 상당수가 떠났다. 한 농민은 "농촌 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일당을 더 쳐준다고 해도 떠나버렸다. '촌로'들이 애를 써보지만 힘이 부친다"고 했다.

또 다른 농민은 "일손 부족은 일상이 됐다. 해답은 일할 사람이 많아져야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경작 면적을 줄여야할 형편이다"고 푸념했다.

◆외국인 코로나19 확진 비율 절반… 침체한 농촌

농촌 일손 부족의 심각성은 그동안 농촌의 버팀목 같았던 외국인 근로자의 이탈이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의 수급이 여의치 않은데다,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 중 일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일터에서 완전 배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 경산과 영천 등 외국인 근로자들의 집단 감염은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부채질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경북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중 외국인 비율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달 4일 확진자 중 31.6%가 외국인이었고, 5일 65.5%, 6일 41.8%, 7일 64.9%, 8일 44.7%, 9일 46.7%, 10일 66.7%, 11일 50.0%, 12일 36.6%로 나타났다. 최근 9일간 잇따라 발생한 경북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중 절반(49.8%) 가량이 외국인으로 집계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경북에서 외국인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그 여파는 고스란히 농촌으로 스며들고 있다. 확진자 발생으로 관련 접촉 외국인들의 자가격리가 늘어나 외국인 인력난은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농가의 어려움으로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청송은 이달 초부터 가을사과 품종인 '시나노 스위트'와 '시나노 골드' 수확이 시작됐고, 이달 말부터는 부사가 수확되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 수확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국인들끼리 단체로 일을 도왔지만, 지금은 한두 명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다.

아쉬운대로 일자리 중개소를 통해 대도시에서 내국인 일할 사람을 구해오지만 일당이 15만~18만원을 줘야 하는 형편이라 농가는 등골이 휜다.

농민 황모(57·청송) 씨는 "일당 12만원에 외국인을 쓰면 간식이나 점심을 챙겨주지 않아도 일을 열심히 한다"며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은 간식에 점심, 틈틈이 쉬는 시간까지 요구해 일도 늦어지고 돈도 많이 들어 애가 끓는다"고 말했다.

고령화 된 경북지역 농가들은 일손부족으로 수확철이면 해마다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사진은 일할 사람은 없는데 수확철도 지나 사과가 낙과되고 있지만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하는 한 고령 농장주가 자신의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윤영민 기자
고령화 된 경북지역 농가들은 일손부족으로 수확철이면 해마다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사진은 일할 사람은 없는데 수확철도 지나 사과가 낙과되고 있지만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하는 한 고령 농장주가 자신의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윤영민 기자

◆농촌 일손부족 심각… 인건비 상승 등 농가 부담 늘어

전국 최대 생강주산지로 통하는 안동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뿌리작물인 생강은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수확을 시작한다. 생강은 뿌리가 훼손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확할 때 힘과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줄기 자체가 여린 대나무처럼 가늘고 얇은데 뿌리는 순록의 뿔처럼 크고 넓어 자칫 실수하면 부러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확한 생강은 대부분 농협에서 수매하는 데 이마저도 흙이 많이 붙어 있는 경우 수매가 거부될 수 있어 손이 많이 간다.

일 잘하는 숙련자가 많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가들은 해마다 일손 부족 문제로 고생하고 있지만 다른 작물을 선택할 수도 없다. 생강은 감자나 콩, 벼 등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 면적당 소득이 더 높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농가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고생을 감수한다. 또한 다른 작물을 키운다해도 근본 원인인 일손부족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확 시즌이면 근로자의 일당도 오른다. 기존에는 하루 8만~10만원 받던 사람들도 성수기엔 15만은 기본이고 18만원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외국인 근로자 역시 이제는 농촌 사정을 꿰뚫고 있어 내국인과 같은 일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발길도 주지 않는다.

일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하니 농가들은 근로자의 '간택'을 기다린다. 다른 농가보다 넉넉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며 구애하기도 한다.

농민 김모(67·안동) 씨는 "일을 도와줄 근로자를 1, 2명이라도 고용하고 싶지만, 내국인은 구하기도 어렵고 외국인도 이미 대규모 농사를 짓는 농가들에 채용돼 영세농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밤에 불을 켜놓고라도 작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벼 수확 대행업체들의 일당도 동반 상승해 농민의 주머니는 돈이 남아나질 않는다. 안동지역에서는 지난해 기준 벼 수확 대행료가 661㎡ 당 5만원이었지만 올해는 7만원으로 2만원이 인상됐다.

벼 수확에 필요한 콤바인 등 농기계 구입비가 대당 1억원을 호가하는데다 대행업체도 많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니 수확을 앞둔 농민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일손부족에 병해까지…수확 포기 고민

일손 부족을 해결하고자 각 지자체와 농업인 관련기관에서 여려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부족한 일손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예천군은 지난해 5월부터 농촌일손지원센터를 운영해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된 사람 등을 모집해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900여 농가에 4천300여 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일부 일손 부족은 해결되고 있으나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농업에 전문성이 없어 단순 노동이 필요한 곳에만 투입되고, 또 일부는 농사일을 버티지 못하고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마련해 준 지자체와 노동력을 쓰는 농가 모두 난처한 상황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각 지역에 있는 농협에서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나가 일손을 돕고 있지만, 당일치기에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일 경북 안동지역 한 벼 재배 농가에서 벼 수확 대행업체가 작업을 하는 모습. 올해는 지난해보다 벼 수확 대행료가 상당 부분 인상됐다. 김영진 기자
20일 경북 안동지역 한 벼 재배 농가에서 벼 수확 대행업체가 작업을 하는 모습. 올해는 지난해보다 벼 수확 대행료가 상당 부분 인상됐다. 김영진 기자

예년보다 심했던 폭염과 갑작스런 폭우 등 이상기후가 많아 올해는 농작물의 병해 피해도 늘어 일손 부족에 시달리던 농가가 수확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농민 최모(63·안동) 씨는 "지난해에는 근로자를 결국 구하지 못해 사회생활하는 아들이 휴가를 내고 와 수확을 도왔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며 "하필 얼마 전 무릎 수술을 하는 바람에 이제는 쪼그려 앉아 수확하는 작업 자체를 못하게 돼 할아버지(남편) 혼자 모든 일을 해야할 판인데다 작물마저 각종 병해 피해로 생육이 좋지 못해 올해는 수확을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